1. 건조와 편성

야마토는 1934년에 세계에거 가장 큰 전함으로 설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설계는 1937년의 3차 증강계획때 승인이 되어 함의 발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37년 11월 4일 구레 해군공창에서 건조에 들어갔으며, 1940년 8월 8일에 진수되었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있은지 대략 1주일 후인 1941년 12월 16일에 전함의 건조가 끝났습니다.

 

구조물이 갖추어진 야마토의 모습

 

야마토가 취역할 즈음에는 전함의 주도권은 이미 항공모함과 함재기에게 넘어가버렸던 때였지만, 일본 해군은 아직 새로 건조되는 전함을 보며 큰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야마토는 건조 즉시 1전함분대 - 그 때까지는 전함 나가토와 무츠가 있었던 - 에 소속이 되어 원기있는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1942년 2월 12일 일본 해군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나가토에 있던 자신의 사령기를 야마토로 옮겨 계양하였습니다 - 일본해군의 기함이 된 것이죠.

 

2. 대기의 날들

야마토의 첫 출격은 1942년 5월의 미드웨이(Midway) 해전이었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기함으로 큰 전과를 마무리지을 것을 기대하며 당당한 첫 출격을 하였으나, 잘 아시다시피들 일본 1,2 항공모함기동부대가 모두 괴멸해버리는 대 패배를 뒤편에서 속수무책으로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운명에 빠져버렸습니다. 전투 후에 모든 함대의 장교와 승무원들의 속 쓰린마음과 함께 내해로 귀환하였습니다.

미드웨이에서의 대패 이후에, 야마토를 비롯한 일본의 전함들은 전투시에 그들의 우산이 되어 줄 항공모함과 함재기들의 괴멸로 인하여 전투에 나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대신 일본 해군이 바라는 한 번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일대 결전을 위해 온존하게 되고, 항공모함 부족사태를 맞아서, 아직 건조중인 3번함 시나노는 초대형이 될 항공모함으로 목표가 바뀌게 됩니다.

1942년 8월, 미군의 과달카날(Guadalcanal)섬 상륙작전으로 인해 전쟁의 불씨는 솔로몬(Solomon)제도로 튀게 되고, 야마토는 과달카날섬을 되찾기 위한 일련의 가혹한 작전의 지원을 준비하기 위해 트럭(Truk)섬에 주둔하게 됩니다. 1942년 2월 11일, 야마토는 기함 역할을 전함 무사시에게 넘기게 됩니다.

과달카날섬의 실함과 1943의 야마모토 제독의 전선 순시중 미군의 기습에 의한 순직 이후에, 야마토와 무사시는 늘어나는 이런저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본국에 보내지게 됩니다. 미네이치 코가 제독이 야마모토 제독의 뒤를 이어 새 해군사령관으로 임명됩니다.

본국에 돌아온 야마토는 즉시 구레 군항의 건선거에 넣어져서 사소하지만 매우 필요했던 보수에 들어가게 됩니다. 1943년 중순 야마토는 다시 트럭 섬으로 이동하여 무사시와 더불어 길버트(Gilbert)섬과 마샬(Marshall)제도를 지키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적과 교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트럭 섬에서 허송세월하게 됩니다.

 

트럭 섬에서 허송세월하고 있는 야마토와 무사시

 

1943년 말경에 야마토는 미국 잠수함으로부터 첫 번째의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야마토는 일본에서 돌아와서 트럭 환초에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3번 함포 근처의 좌현에 어뢰를 맞았습니다. 중장갑을 받치고 있는 브라켓들이 피해를 입었고, 그 결과 대략 3천t의 물이 함의 3번포탑 화약고에 가득 찼습니다. 야마토는 즉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조치받아, 1944년 1월 16일에 구레 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 즉시 건선거에 들어가서 필요한 수리와 더불어 어뢰공격에 결점을 드러낸 브라켓 구조의 교체를 받고, 동시에 야마토의 양 현측의 6.1인치(155mm) 부포들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 5인치(127mm) 2연장 대공포로 교체되었는데, 이 수리와 교체는 1944년 4월에 끝났습니다.

야마토는 이번에는 싱가폴(Singapole) 남쪽의 링가(Lingga) 정박지로 가서 재조직된 함대의 나머지와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야마토는 1944년 5월 1일에 도착하였고, 10일 후에 함대는 다가오는 연합군의 진격과 맞서 일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아'호 작전의 출발지점인 술루(Sulu)열도의 타위타위(Tawitawi)로 이동하였습니다. 야마토는 5월 16일 무사시와 다시 합류하였습니다.

제1전함분대는 일본항공모함기동부대를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미군이 5월 말에 뉴 기니아(New Guinea) 서쪽의 비아크(Biak)섬에 상륙했을 때, 일본해군은 2척의 야마토급 전함을 이용하여 미군 상륙부대에 일격을 가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야심적인 계획은 미군 상륙부대가 사이판(Saipan) 섬에 상륙하게 되자 이 쪽의 전국이 더 급해지게 되어 출발했던 함대를 불러들임에 따라 무위로 돌아가게 됩니다.

미군의 사이판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던 1944년 6월 중순에 있었던 필리핀(Philippine)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3척의 항공모함과 더불어 대다수의 함재기와 육상기들을 날려먹어, 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공투사세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참가 자체를 하지 못하여 피해를 입지 않은 야마토와 무사시는 6월 말에 본국으로 귀환하여, 사이판과 마리아나(Mariana)열도의 상실로 인하여 위협에 놓이게 된 필리핀, 포르모사(Formosa), 오키나와(Okinawa)와 본토의 수비 준비를 하게 되는데, 5개의 3연장 25mm대공포가 더해져 모두 29문의 25mm대공포를 가지게 됩니다.

 

3. 레이테 해전 - 처음으로 주포를 쏘아봄

1944년 6월 9일 야마토와 무사시는 급히 링가 정박지를 향에 본국을 떠나 남쪽으로 이동, 6월 16일에 도착하여, 다가오는 결전에 대비하여 강도높은 훈련을 받습니다. 일본의 항공모함기동부대는 필리핀 해 해전 이후 실질적으로 전멸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의 공세를 저지할 수단은 이제 대구경 함포를 가진 전함들 뿐이었습니다. 술루 섬에서 "레이테 만 입구에 적군이 상륙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링가만의 함대는 쇼1호 작전의 발동으로 비상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함대는 10월 18일 링가 정박지를 떠나서 2일 후에 브루나이(Brunei)에 도착하였습니다. 브루나이에서 연료 보급을 받은 후, "필리핀 섬을 통과하여 대담한 돌격으로 레이테 만에 상륙중인 미군 함대를 격멸하라"는 지령을 받고, 10월 22일 1700시에 함대는 출발하였습니다. 레이테 해전의 시작입니다.

레이테 해전 전체의 내용은 여기의 링크를 보시면 되겠고, 야마토에 관련된 부분만 언급하면... 구리다 제독 지휘하에 브루나이를 출발한 제1유격함대 본대는 23일 새벽에 미국 잠수함들의 기습으로 함대의 기함이었던 중순양함 구마노 등 2척의 중순양함을 잃었고, 구리다 제독은 함대 사령부를 야마토로 옮기게 됩니다.

24일 아침부터는 미국 항공모함기동부대의 항공기들에게 5차례에 걸친 공습을 받았는데, 자매함 무사시는 이 공습에서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1835시 경에 1039명의 승무원과 더불어 시부얀 해의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야마토는 1330시 경에 2발의 폭탄을 맞고 2천t의 해수가 유입되어 함이 약간 기울게 되었으나, 균형을 잡기 위한 역침수와 수리가 빠르게 완료되어 전투력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1500시에 속임수로 반전침로를 잡았던 함대는 1614시에 재차 반전하여 야간에 피해없이 산 베르나르디로 해협을 빠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피해없이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새벽 0549시에 전함의 마스트 근무병에게서 2만8천야드(2만5600m) 거리 - 전함들의 주포 사거리 내 - 에 적의 항공모함기동부대 - 실제는 태피3 호위항공모함부대 - 를 발견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구리다 제독은 대공윤형진으로 재편성하던 기동을 중지하고 즉시 함대 속도를 24노트로 올려 진격할 것을 명령하였고 함대는 무질서한 상태로 진격해들어갔습니다. 사미르 만 해전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야마토는 0558시에 생전 처음으로 목표를 향한 주포 사격에 들어갔고, 0610시에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Gambier Bay)에 첫 명중탄을 기록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18인치(40.6cm)포를 104발을 발사하였을 때, 우현 100도로 어뢰가 접근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야마토는 사격을 그만 두고 이를 피하기 위하여 좌현으로 급회전하였고, 재차 변침하여 거의 북쪽 침로를 잡게 되어 어뢰가 따라오지 않을 때까지 나아갔습니다. 이 침로는 목표인 태피3 함대와는 반대방향이었고, 어뢰때문에 전장에서 벗어남에 따라, 탑승하고 있던 사령관 구리다 제독에게 전투에 대한 상황파악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무질서한 전투에서 미국측은 호위항모 1척과 구축함 2척 그리고 호위구축함 1척을 상실하였으나, 일본 또한 뒤늦게 날아온 미국의 항공 세력에 의해 3척의 순양함이 대파되고 거의 모든 함정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야마토는 별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전투 후에 특공정신을 잃어버린 구리다 제독은, 레이테만에 접근하던 함대를 강습 직전에 변침하도록 명령을 내려, 상륙군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는 무산되었고, 이후 연이은 공습에 살아남아 출발지인 브루나이로 회항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시부얀해에서 미군의 공습에 열심히 저항하는 야마토의 모습

 

브루나이도 미군 공습권내에 들어섰기 때문에, 야마토를 비롯한 잔존함대는 일본 본국으로 철수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야마토는 1944년 11월 16일에 구축함들의 호위를 받으며 브루나이를 떠나, 11월 23일 내해에 도착합니다. 도착 후에 가중되는 공습에 대비하여 35개의 25mm대공포를 장착하는 개조를 받게 되어 야마토는 모두 12개의 3연장과 23개의 단장 대공포를 탑재하게 됩니다.

 

4. 마지막 자살출격

...위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이녀석이 좀 글이 깁니다. 전체적으로 보아도 솔직히 이 때 밖에는 길게 읊조려 볼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다른 참조할 글이 없다 보니 그냥 글투 손 안 보고 그대로 옮겼으니, 재미있게 보시기 바랍니다. 집쥔의 어투가 다를 약간의 잡담도 들어가는데, 맘에 안 들어도 웃으면서 넘기시기를.

 

1) 그런 처지가 되어버린 배경

1945년에 들어 미군은 이오지마(硫黃島)를 점령하고 점점 본토로 다가와 오키나와에 상륙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큐슈와 혼슈차례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일본군은 다가오는 본토에서의 결전에 앞서 미군의 세력을 어떻게라도 좀 더 줄여보기 위하여 필사적인 저항을 벌이게 됩니다.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우시지마 중장 예하의 일본군이 필사적인 저항으로 미군을 지역에 묶어두면, 그를 지원하는 항공모함기동부대를 비롯한 미군의 대함대는 근처에 묶일 것이고, 장점인 기동성을 잃고 한 지역에 정박해 있는 함대를 공격하여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본토 결전때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는 생각으로 '텐고(天考)'작전이 계획됩니다.

작전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군 함대를 공습할 수 있는 숙련된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필리핀 전역에서 시험삼아 사용해보아 생각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전투방식인, 가미가제 - 자살공격 - 로 해결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능력 부족은 피로 메꾼다는 섬뜩한 생각이라고 하면. 텐고 작전 내에서, 이 가미가제를 이용한 미국 함대에의 공습작전 한 번 한 번은 '기꾸스이(菊水) 작전'으로 이름붙여집니다. 1945년 4월 1일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하고, 4월 6일에 기꾸스이 1호 작전이 발동됩니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숙련 조종사들을 함대에 접근하기 전에 떨어뜨릴 미국 항공모함기동부대의 요격기들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끌어들일 미끼가 필요한 것이었죠. 그래서... (색이 다른 곳은 타임라이프의 지문)

일본해군의 최고 수뇌들은 작전의 일환으로서 해군에게 희생적 행동을 강요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가끼 중장 지휘하의 특공기가 오키나와 주변지역의 적 함정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많도록 하기 위해 초대형 전함 야마토(大和)와 경순양함 야하기(失 ) 그리고 8척의 구축함 - 이소카제, 하마카제, 아사시모, 카스미, 하츠시모, 후유츠키, 스즈츠키 그리고 유키카제 - 등 제2함대의 나머지 병력을 모두 출격시켜, 제58기동부대의 항모군을 오키나와 근해로부터 유인한다는 작전을 말한다. 미군 함재기와의 전투에서 이들 군함 중 한 척이라도 살아남으면 오키나와 근해까지 항해를 계속하여 그곳 백사장에 스스로 좌초되어 불침포대(不沈砲臺)로서의 구실을 다하여 미군 함대를 포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함포의 포탄이 바닥나면 해군장병은 미군들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이 작전의 난점은 야마토를 사지(死地)에 몰아넣는다는 것이었다. 3천명이 탑승하는 이 거대한 함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토가 전투에서 이름을 떨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야마토는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중요 해전에 항상 참가하고 있었으나 그 거대한 주포(主砲)가 적함을 향해 발사된 일은 거의 없었다. 1944년 10월의 레이터만 전투 때에는 미국 항모부대를 추적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한 끝에 결국 전선에서 이탈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미군 함정과의 교전에 실패만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부 일각에서는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 제독이 인정했던 것처럼 야마토는 "게으르고 무능한 제독들 때문에 떠 있는 호텔"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요다 소예무(豊田副武)대장과 해군의 일부 참모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 야마토를 내해(內海)에 대피시켜두고있기보다는 차라리 대담한 공격작전에 출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도요다 대장은 극심한 항의가 빗발치는 가운데 제2함대 사령관 이또 세이이치(伊藤整一)중장에게 4월 6일 다음의 구절을 삽입한 운명적인 지령을 내린 것이다. "황국(皇國)의 흥폐(興廢)는 바로 이 일거(一擧)에 달려 있다."

 

2) 출격과 포착

벚꽃이 만발한 언덕을 뒤에 두고 야마토를 비롯한 함대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면한 도꾸야마(德山)항에서 마지막 항해를 준비했다. 야마토는 4월 5일 오후부터 밤 사이에 걸쳐 1170발의 주포용 탄약과 4000t의 연료 - 오키나와까지의 편도(片道)분량 -를 실었다. 그날 밤 푸짐한 주연(酒宴)이 벌어졌다. 이 때의 분위기에 관해 요시다 미쯔루(吉田滿)소위는 그의 저서 '전함 야마토의 최후'에서 '부레이꼬오(상하 구별없이 즐기는 술자리)'라고 쓰고 있다. 경순양함 야하기의 함장 하라 다메이찌 대령은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 게이조오 소장과 실컷 마셨다. 두 사람은 마침내 취한 끝에 큰 소리로 울었다. 하라 대령은 창틀에 매달려 "만세!"를 외쳤다. 야마토에 탑승할 하사관 이하 수병들에게는 전별 기념으로 국화의 문장(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온시노 다바코(임금이 하사한 담배)"가 내려졌다.

다음날인 4월 6일 함대는 도꾸아먀 만을 출항하여 시코쿠와 큐우슈우를 갈라놓은 좁은 해협인 붕고(豊後)수도를 누비듯이 빠져나가 일로 오키나와를 향해 남쪽으로 달려갔다.

 

야마토의 마지막 출격의 요도

 

다음날인 4월 7일 아침 기꾸스이 1호 작전의 해상부대, 강대한 전함 야마토를 중심으로 한 함대가 미군 제58기동부대 항공기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전속력으로 항행하고 있었다. 미군은 일본함대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함대가 붕고 해협을 나서자 2척의 미군 잠수함 스레드핀과 해클백이 추적하여 즉시 그 위치를 제58기동부대에 통보했다. 오전 832시 일본군 함대는 항모 에섹스에서 출격한 비행기에 포착되었고 그 직후 PBM 마틴 마리너 비행정이 발견하여 추적을 계속하였다.

그 사이 미군측에서는 견해차가 표면화하고 있었다. 제5함대 사령관 스프루언스 제독은 오키나와 근해에 있던 대규모의 미군 함정 선단을 동원하여 야마토를 격파할 생각이었다. 미군 군함의 수병들은 최근 수 개월동안 해안 포격이나 항모 호위 등의 임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함대함(艦對艦) 전투를 별로 경험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제58기동부대의 지휘관 미처 제독은 휘하의 함재기 조종사들이 세계 최강의 군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보이고 싶었다. 그는 참모장인 알레이 버크 준장에게 명하여 "특별한 명령이 없는 한 정오에 야마토 부대에 공격을 가하기로 한다"는 뜻을 스프루언스에게 통보하게 했다. 버크는 좀 더 간단명료하게 전보를 쳤다. "귀하가 하느냐? 우리가 하느냐?' 스프루언스는 양보하여 대답하여 왔다. "귀하에게 맡기겠다"

야마토 자체한테나, 호사가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vs 아이오와(Iowa)급 혹은 사우스다코다(South Takota)급들과의 대전이 볼만했을터인데 말입니다마는... 희생이 적은 쪽이 더 좋은 것이니 당연한 선택이겠지요. 미군이 공격을 준비하는 사이인 0900시경에 구축함 야마구모가 엔진 트러블이 생겨 함대에서 점점 뒤쳐지게 됩니다.

 

3) 전투... 라기보다는 마지막 안간힘

10시, 미처는 대규모의 첫 번째 공격을 가했다. 1천파운드(453kg) 폭탄이나 500파운드(227kg) 폭탄을 탑재한 커티스 SB2C 헬다이버나 마크 13어뢰를 탑재한 TBF 어벤저 등 350여 대가 출격했다. 하늘은 흐리고 날씨는 나빠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공격부대는 일본군 대공화기의 사정권을 벗어나 구름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선회할 수 있던 미군 비행정의 유도를 받으며 마침내 이또 중장의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1232시 야마토의 레이더가 내습하는 적기를 포착했다. "천탐실(電探室) 실장 하세가와(長谷川)는 그 특유의 흐린 목소리로 적기가 떠 있는 상공의 거리와 각도를 알렸다"라고 야마토 함교에서 전투배치에 임해있던 요시다 소위는 나중에 쓰고 있다. "즉시 함대의 각 함 앞으로 긴급신호를 발했다...... 확성기가 그 사실을 알리고 나자 함내는 오히려 조용해졌다...... 대공전투 박두, 탐지방향에 대해 각부는 감시를 집중했다."

이윽고 감시원이 미군기를 포착하였다. 야마토의 항해장이 외쳤다. "적기는 100대 이상, 현재 돌진해오고 있음."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야마토와 동료함의 포가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야마토의 탄막을 뚫고 2대의 헬다이버기가 교묘히 침입해 왔다. 1241시 2대의 헬다이버기는 각기 폭탄을 야마토의 메인 마스트 부근에 명중시켜 그 뒤편의 레이더실을 파괴하고 8명의 수병을 죽였다. 4분 후 어벤저가 발사한 어뢰 하나가 이 거대한 전함의 좌현 앞 부분에 명중했다. 이윽고 미군기는 공격을 중단하고 각기 모함으로 돌아갔다. 야마토의 함교에 있던 장교들은 단 1발의 어뢰쯤으로는 이 거대한 전함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항해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용케도 한 방 먹였군." 그러나 이또 중장은 그렇게 무신경하지는 않았다. 그는 공습으로 희생된 3명의 시체가 함교에서 실려나오는 것을 냉정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최악의 사태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헬다이버 폭격기의 시점에서 내려다보이는 야마토의 모습이라는군요.

 

이또 중장의 불안은 수분 후 제2파의 미군 공격기 편대가 내습함으로서 현실화되었다. 1337시와 1344시에 일단의 어벤저기가 5발의 어뢰를 야마토에게 쏘아대었다. 모두가 좌현에 명중했다. "일본해군에서 으뜸가는 '야마토'의 탄막은 융단 모양으로 펼쳐지는 빨강, 보라, 노랑, 녹색 등 극채색으로 작렬하여 적지않은 위협을 주기는 했으나, 그 위협은 탁상에서 계산했던 것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라고 요시다 소위는 쓰고 있다. 갈갈히 찢긴 여러 곳의 틈 사이로 바닷물이 흘러들어 야마토는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연속 피뢰(被雷)로 응급 담당자들의 사상(死傷)이 많아 방수차방(防水遮防)작업이 어려워졌다"라고 요시다소위는 썼다.

함교에 있던 장교들도 이제는 함의 자세를 바로잡고 침몰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함장인 아리가 고오사쿠(有賀幸作) 대령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우현쪽의 기관실과 보일러실을 역침수시키도록 명령하였다.

"'서둘라.' 나는 전화를 통해 지휘소를 독촉하였으나 비상대피의 '부저'도 이미 늦었던 것이다." 요시다 소위는 회상하고 있다. "당직 기관 담당병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순간 비말의 한 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그들은 그 순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안하고 다만 한 덩어리가 되어 녹았고 소용돌이가 되어 흩어졌다."

이 조치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야마토의 속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타장치가 사용 불능이 되고 속력이 떨어지자 야마토는 좌현 방향으로 목표도 없이 표류하여갔다.

미군 폭격기의 내습은 계속되어 전함의 대공포가(對空砲架)가 파괴되어 나갔다. 요시다 소위는 쓰고 있다. "어뢰 몇 개가 좌현의 각 부를 도려냈다. 뒤쪽 마스트 및 뒷 갑판에 직격탄 10여 발. 내습기의 함교 공격은 더욱 치열해졌다...... 병사들은 대피하기 위하여 탄편 사이를 뚫고 달려가다가 대부분 튕겨져 쓰러져갔다. 마치 장난삼아 춤을 추는 것과도 같았다...... 다만 맨몸을 뜨거운 쇠팔매 속에 드러내 놓는 것 뿐." 쉴새없이 떨어지는 폭탄 때문에 야마토의 상부는 갈갈이 찢기고 강판(鋼板)은 곰보 모양을 젖혀지고 있었다. 기울어진 갑판에 승무원의 피가 흐르고 응고한 핏덩어리나 살점이 부풀어오른 금속덩어리의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생존자는 싸움을 계속하였다. 적기의 총탄에 의해 가까이에 있는 3연장 25mm 기관포의 포수가 쓰러지자 한 수병이 시체를 밀어내고 교대했다. 잠시 뒤 헬다이버가 떨어뜨린 폭탄의 탄편이 포신의 한 가운데에 맞고 파편이 그의 이마에 박혔다.

미군기는 되풀이해서 공격을 가했다. 1407시 야마토는 다시 어뢰 1발을 우현에 맞았다. 그로부터 10분도 지나기 전에 3발의 어뢰가 갈기갈기 찢긴 좌현에 명중했다. 야마토는 이미 파괴된 해상 유기물(遺棄物)에 지나기 않았다.

이 사이에 야하기는 단 1발의 어뢰로 항행불능이 되어있었다. 이 무력한 경순양함에 미군기가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다시 6발의 어뢰와 10발이 넘는 폭탄이 야하기에 치명타를 가했다. 1405시 야하기는 침몰하였다. 야하기 함상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 게이조 소장은 가라앉고 있던 함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에 시계를 들여다 보아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빠져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슬며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그의 옆에는 기름으로 얼굴이 새까매진 사나이가 한 사람 있었다. 야하기의 함장인 하라 다메이찌 대령이었다.

그 무렵까지 야마토의 기울기는 30도를 넘어 계속 기울고 있는 중이었고 이제 완전히 옆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었다. 함장인 아리가 고오사쿠 대령은 함과 함께 가라앉을 각오를 굳히고 나침반의 대좌(臺座)에 자신을 묶었다. 그는 이또 세이이찌 중장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장군님은 귀중하신 몸이십니다. 아무쪼록 승무원과 함께 퇴함하십시오." 그러나 이또 중장도 목숨을 끊을 각오였다.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는 사령관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부장(副長)인 노무라 지로(能村次郞) 대령은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함에 걸린 일왕의 사진이 떠내려가서 미군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함장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노무라는 함내 통화장치로 연락을 취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제9분대장 핫도리 신로꾸로(服部信六浪) 대위가 이미 일왕의 사진을 떼네어 자기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틀어박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일왕 사진과 더불어 가라앉을 각오였던 것이다.

 

4) 침몰

1423시 야마토는 전복하여 폭발하고 거대한 불기둥을 하늘높이 뿜어올렸다. 그것은 북동쪽으로 200km 떨어진 규우슈우 남단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거함은 가라앉았다.

 

야마토의 마지막 폭발 모습

 

노무라 대령은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밑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라앉는 도중 주변의 바다는 투명하고 그 속에서 다른 사나이들이 '하늘하늘 춤추는'것이 보였다. 더욱 깊이 빨려들어감에 따라 바다는 어둡고 끝모를 깊이를 가진 청색으로 바뀌어갔다. 그 때 갑자기 빨간 섬광이 몇 줄기 깊은 곳을 달렸다. 훨씬 아래쪽에서 야마토의 나머지 탄약고가 폭발한 것이었다. 바닷물이 요란하게 흔들려 그에게 '천지가 뒤집히는'느낌을 가지게 하였으나 그것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바닷물이 세차게 솟아 올랐기 때문에 노무라는 수면에 떠 올랐다. 그는 하늘을 향해 드러 누운채 떠 있었다.

8척의 구축함 중 4척이 침몰하고 나머지 4척 중 1척도 절름발이 상태였다. 그래서 구축함 후유츠키(冬月)에 있던 제41구축함대(驅逐艦隊) 사령관은 바다에 흩어져 표류하는 생존자들을 구조하여 재기를 꾀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잔존함에 생존자를 구조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구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도(地獄道)와 같았다고 요시다 소위는 말하고 있다. 이미 구조된 표류자로 꽉 찬 구조정의 승무원들은 자기 배를 살리기 위하여 뱃전에 매달리는 표류자들의 손을 일본도(日本刀)로 가차없이 내려쳤다고 한다. 살아서 구출된 최고위의 장교는 저녁때가 다 되어 구출된 고무라 소장이었다. 전투지휘를 다시 할 생각으로 그는 몸에 묻은 기름을 씻어내고 군복을 빌려입고는 제1유격부대의 지휘를 승계했다. 그는 3척의 구축함을 거느리고 북상중인 손상함의 수색을 개시했다. 이윽고 연합함대 사령관으로부터의 명령이 부대에 도착했다. "제1유격부대의 돌입작전을 중지한다. 제1유격부대 지휘관은 승무원을 구조하여 사세보(佐世保)로 돌아오라."

이리하여 해군의 해상부대가 감행한 기쿠스이 1호 작전은 처음에 있던 10척 중 6척과 야마토에서만 2700명 이상의 승무원을 잃은 채 목표지점까지 아직도 340km나 남긴 위치에서 끝났다. 이 작전에 의한 미군측의 피해는 조종사 12명과 헬켓 3대, 헬다이버 4대 그리고 어밴저 3대였다.

 

야마토의 침몰까지의 상황도
함은 침몰 전까지 적어도 12발의 어뢰와 10발의 폭탄을 맞았다는 최종 견적이 있습니다.

 

 

후일담

...이렇게 하여 전함 야마토는 세계 제일이라는 그 덩치를 가지고도 변변한 함대함 싸움 기록을 가지지 못한 채 날파리같은 함재기들에게 유린당하여 태평양 바닷속으로 들어가 잠드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일본인들은 잠수부를 동원하여 1970년대에 가라앉은 야마토의 잔해를 찾았는데, 전함은 두 조각으로 갈라져서, 선수부분은 완전히 전복되었고 선미부분은 좌현으로 기울어져있더라고 합니다. 요는, 만화처럼 고대로 멀쩡한 몸체를 건져낼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하면 될 듯 싶습니다.

무단전재는 아니된다고 하는 것 같으니 이 링크를 클릭하여 잔해의 상황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링크도 안 되지는 않겠지 설마.

Posted by 모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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